권력의 주변부, 배우자를 위한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 등록 2025.12.30 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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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권력의 주변부, 배우자를 위한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김병기 의원 배우자와 관련한 논란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구조적 공백을 다시 묻고 있다. 문제는 누가 잘못했는가에 앞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이다. 답은 분명하다. 권력의 주변부에 있는 ‘비공식 행위자’에 대해 아무런 기준도, 교육도, 안내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배우자는 법적으로 공직자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공직 권력의 반경 안에 있다. 민원인과 접촉하고, 지지자와 관계를 맺고, 일정과 의전을 보조하며, 때로는 남편이나 아내의 업무를 비공식적으로 돕는다. 이 역할은 법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존재하는 역할을 존재하지 않는 척 방치할 때, 사고는 반복된다.

 

필자가 1994년 일본 조직과학학회지에 발표한 「사장부인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비공식 조력자’의 존재를 조직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였다. 기업의 사장 부인은 공식 직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서, 조력자, 완충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역할이 제도 밖에 놓일수록 판단은 개인의 상식과 경험에 의존하게 되고, 그만큼 위험은 커진다. 기업에서는 손실로 끝날 수 있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국가 신뢰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정치인의 배우자 역시 같은 구조에 놓여 있다. 그들은 공직자가 아니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배우지 못한 채 판단의 부담만 떠안는다.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라는 선의가 ‘권한 남용’으로 해석되는 순간, 배우자 개인은 물론 공직자 본인과 제도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사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 교육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통제나 감시가 아니다. 오히려 보호에 가깝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지, 어디까지가 조력이고 어디부터가 개입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는 배우자를 공적 권력의 그늘에서 홀로 판단하게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교육의 내용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첫째, 공·사의 구분과 이해충돌의 기본 원칙을 사례 중심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조력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전달자나 연결자가 되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구체적으로 인식시켜야 한다.

 

셋째, 민원인과 지지자를 대하는 표준 응답과 거리두기 기술을 알려야 한다.

 

넷째, 말 한마디와 메시지 하나가 갖는 공적 파장을 이해하도록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논란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 원칙, 즉 중단과 보고, 침묵과 설명의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특혜가 아니다. 배우자를 권력의 동반자로 격상시키는 장치도 아니다. 오히려 권력의 주변부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오해와 희생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 장치다. 배우자가 기준을 알고 있을수록, 공직자 본인의 부담도 줄어든다.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하는 사회보다, 기준을 제시하는 사회가 더 성숙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배우자는 사인(私人)”이라는 말로 모든 논의를 차단해 왔다. 그러나 사인이라는 이유로 아무 기준도 주지 않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권력의 반경 안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자율과 동시에 더 분명한 안내가 필요하다. 그것이 개인을 보호하고, 공직을 보호하며, 민주주의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배우자 교육은 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돕는 제도다. 이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하는 사회에서, 미리 기준을 세워 신뢰를 지키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각주 : 비공식 조력자의 역할을 처음 문제 삼다 본 칼럼의 문제의식은 필자가 일본 조직과학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社長夫人の役割に關った硏究」(『組織科學』 1994. Vol.28 No.1)에 기초하고 있다. 해당 연구는 기업 조직에서 사장 부인이 공식 직함이나 법적 권한은 없으나, 실제로는 비서·조력자·완충자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논문의 핵심 결론은 ‘이러한 비공식 역할을 제도 밖에 방치할수록 판단은 개인의 상식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조직 리스크는 오히려 커진다’는 점이었다. 당시 연구는 기업 조직을 대상으로 했지만, 오늘날 정치·행정 영역에서 반복되는 배우자 관련 논란은 이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비공식 조력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사전 교육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조직과 공공성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이 연구는 현재적 시사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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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기자 yume20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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