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톡(talk) 엉망진창,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세계 잼버리(World Jamboree)란?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서 매 4년마다 개최하는 전 ‘세계적인 청소년 야영대회’이다. 1920년 영국의 런던 올림피아에서 포우엘경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민족, 문화,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하여 국제 이해와 우애를 다지는 보이스카우트의 세계야영대회로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벌에서 1991년 8월 8일부터 16일까지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91년 제17회 강원도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세계는 하나(Many Lands, One World)’라는 주제 아래 세계잼버리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나라(135개국, 19,083명)가 참가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특히 동구권에서 12개국이 참가하여 세계 청소년들의 화합과 단결의 장이 되었으며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설악의 수려한 산림에 둘러쌓인 신평벌은 외국 대원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역대 대회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고 빼어난 대회장으로 찬사를 받았다. 국가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열렸던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국내외적으로도 성공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
중소벤처뉴스 신병철 기자 | 광주 북구의회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단식농성 7일째 광주 북구의회(김형수 의장) 소속 정달성, 황예원, 신정훈, 김건안의원등이 힘든 단식농성을 7일째 이어가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광주 북구의회 좌측-신정훈, 김건안, 정달성, 황예원 의원] 오늘 오전 10시에 구일암 발행인이 단식농성장을 찾아 7일째 단식농성 중인 북구의회 정달성, 황예원, 신정훈 , 김건안의원등을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북구의회 정달성, 황예원, 신정훈 , 김건안의원등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광주 북구의회에서 출발한 단식농성이 광주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펼쳐지기를 간곡히 원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투쟁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역사적 큰일이라고 하면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중지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광주 북구의회 좌측-김건안, 신정훈, 정달성, 황예원 의원] 본 언론사 구일암 발행인은 북구의회 정달성, 황예원, 신정훈 , 김건안의원등을 통해 본 언론사에서도 기획시리즈로 계속해서 함께하겠다고 하였다. 단식농성장에는 배고픔보다는 폭염이 주는 힘듦에도 의연하게 단식농성을 하는 모습에 깊이 감사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 두목, 이상은 당나라의 시인3. 백거이 호는 향사거산(香士居山), 이칭, 백낙천(白樂天) 장한가(長恨歌) / 백거이(白居易) 칠월칠석에 장생전에서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리라 하늘과 땅도 끝이 있고 시간조차 다함이 있으나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끝이 없으리. 양귀비(楊貴妃)는 쓰촨성 촉주현에서 하급 관리의 4녀로 태어나서 당현종 이융기의 아들인 수왕 이모(壽王 李瑁)와 혼인하여 시아버지 당현종의 첩이 되었다. 수왕 이모는 부인 양귀비를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승려가 되었다. 양옥환은 22세였고 당현종은 57세였다. 양귀비의 오빠는 양소는 당현종으로부터 양국충을 하사받고 승상이 되었다. 양국충에 위기감을 느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다. 당현종은 장안을 버리고 도망갔고 양귀비는 자결했다.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한무제와 이부인의 고사를 인용하여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서사시이다. 장한가를 파사하는 선비가 많아 낙양의 종잇값을 폭등시킨 원인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장한가의 시작은 양귀비가 당현종의 사랑을 받다가 안사의 난으로 자결하는 장면, 중
중소벤처뉴스 정길훈 기자 | 김희정 박사 부부클리닉 제1탄 "부부관계의 비밀" <기 고 문>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협의 이혼을 신청하고 숙려기간 중 상담을 신청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크나 큰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혼을 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협의이혼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아내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 엄마가 왜 이혼하였는지 당당하게 이야기하여 줄 것이라 하였다. 그때 “그래도 엄마는 이혼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상담은 받는 것이라 하였다. [아름다운 동행 상담센터 김희정 소장] 너무나 담담한 아내와 상반되게 위축되어있는 남편 모습의 이미지는 내게는 강렬하였다.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에게 가장 고마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짧고 굵게 한마디 하였다. “무관심요.” 다시 물었다. “남편분과 사는 동안 남편으로부터 가장 힘든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아내는 다시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이러니하게도 대답은 한가지였다. “무관심요.” “남편에게 고마운 것도, 남편에게 서운하고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당나라의 시인1. 이백 이백(李白) 은 자가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은 정치적 큰 이상을 갖고 있었으나 꿈이었을 뿐 끝내 이룰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크게 기뻐하며 장안으로 향하였던 그였으나, 실망한 나머지 장안을 떠나 두루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명산대천을 빠짐없이 찾았다.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체득한 진리를 시로 표현하였다. 망여산폭포를 예로 든다.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 이백(李白) 日照香爐生紫烟,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향로봉에 햇살 들어 불그레 안개 피어나는데 멀리 바라 보니 어허 폭포가 앞 내에 걸려 있네 날아 흘러 곧바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구만리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졌나? 루산(廬山)은 중국 장시성 주장시와 난창시 있는 명산으로 최고봉은 한양봉(汉阳峰)으로 해발 1,474m이다. 1년 365일 중 200일 이상 운무에 둘러싸여 있으며, 국가중점 풍경명승구와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루산은 사마천이 입산하여 사기를 집필했고, 동진의 왕희지가 별장을 짓고 기거했고, 혜원(慧遠)이 정토종을 개창했고, 도연명이 입산하여 시조를 남겼다. 백거이, 이
◆ 夏(하)나라 걸왕(桀王)의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루었다. 향락이 극에 달한 방탕한 생활을 이르는 말. 夏(하)나라는 중국에서 기원전 2700년 경부터 기원전 1600년 경까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전설상의 나라이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우임금이 선양을 받아 건국했고, 마지막 군주 걸왕이 말희(末喜)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기다가 商(상)나라 탕왕에게 멸망했다. 주지육림은 걸왕이 말희와 함께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살 무렵 인공으로 만든 정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못에는 술이 가득했고, 그 둘레에는 고기는 산처럼 쌓이고, 포는 숲처럼 걸려 있었으며,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가 있었고, 수백의 미소년 소녀들과 발가벗고 그 사이를 서로 쫓고 쫓기고 하며, 밤낮 없이 계속 술을 퍼 마시고 즐겼다’라고 사마천은 사기에 걸왕과 말희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을 기록했다. 暴君(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桀紂(걸주)의 淫亂無道(음란무도)한 생활을 표현하는 말이 주지육림이다. 桀(걸)은 夏(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고, 紂(주)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다. ◆ 商(상)나라 주왕(紂王)의 포락지형(炮烙之刑) ‘굽고 지지는 형
우리 민족의 전쟁 3~4화 우리 민족의 전쟁3. 고구려와 당나라의 여-당 전쟁 고구려-당나라 전쟁은 645년에서 668년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전쟁이다. 수문제 양견이 건국한 수나라는 수양제 양광의 폭정과 여-수 전쟁으로 인해 멸망을 자초하여 당고조 이연이 수공제 양유로부터 양위를 받아 당나라를 건국했다. 고구려 영류왕은 당나라에 호의적인 태도로 전쟁을 방지했다.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여 고구려 침략을 준비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하고 강경정책을 펼쳤다. 여-수 전쟁이 끝난 지 30년 만에 여-당 전쟁이 시작됐다. 1차 여-당 전쟁은 645년 당태종 이세민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개모성, 백암성, 현도성, 비사성, 요동성 등을 차례로 함락했다. 고구려 양만춘은 안시성에서 당태종을 막아냈다. 결국 당태종은 후퇴하고 647년과 648년에 소규모 공격을 하였다. 2차 여-당 전쟁은 660년부터 662년까지 당고종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와 함께 고구려의 평양을 직접 공격했다. 백제 부흥군은 왜국으로부터 지원받아 나당 연합군의 후미를 공격하자 당나라군은 퇴각했다. 3차 여-당 전쟁은 666년부터 668년까지 당고종이 평양성을
우리 민족의 전쟁 7~8화 우리 민족의 전쟁7. 고려와 명나라의 홍건적 침입 쿠빌라이 칸은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몽골국의 5대 칸이며 원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아담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지역과 재물, 영토를 소유한 사람이다"라고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서술했다. 쿠빌라이 칸이 사망하자 황위 다툼이 일어났고 황제들이 라마교를 지나치게 숭배하여 국가 재정이 파탄났다. 궁핍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부과하자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백련교도인 홍건적이 봉기했다. 홍건적(紅巾賊)은 비밀결사인 백련교를 기반으로 하는 원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군이다.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러 홍건적이라 하였다. 백련교는 이민족의 지배에 저항하는 사상과 새로운 구세주가 나타날 것이라는 미륵신앙이 결합한 것이다. 홍건적은 원나라의 부마국인 고려에 대한 보복과 식량과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고려를 침략했다. "홍건적들은 임산부의 젖을 잘라 불에 구워서 먹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라고 김종서는 고려사절요에 기록했다. 홍건적의 1차 침략은 1359년 4만여 명의 병력으로 서경을 함락하고 양민 2만여 명을 학살했다.
우리 민족의 전쟁 5~6화 우리 민족의 전쟁5. 고려와 금나라의 고려-여진 전쟁 여진(女眞)은 만주와 함경도 지역에서 거주하는 숙신-말갈계의 유목민족으로 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에 고구려와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여진은 오랫동안 체계적인 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거란에 복속되어 생활했다. 1104년 고려 윤관은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족을 정벌하기 위해 별무반을 편성하여 여진족을 천리장성 밖으로 쫓아내고 동북 9성을 축조했다. 고려는 갈라수 전투에서 패배하고 2년 만에 여진족에게 동북 9성을 빼앗겼다. 1115년 완안아골타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대금(大金)을 건국하고 요나라를 공격했다. 금태종은 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켰고, 1126년 정강의 변으로 북송을 멸망시켰다. 1127년 황족 조구가 강남에서 남송을 재건하여 고종으로 즉위했다. 조부 이자연은 세 명의 딸을 11대 문종에게 시집보내 문종의 장인이자 12대 순종, 13대 선종, 15대 숙종의 외조부이자 14대 헌종의 외증조부이다. 손자 이자겸은 차녀를 16대 예종에게 3녀와 4녀를 17대 인종에게 시집보내 예종과 인종의 장인이자 인종의 외조부이다. "지금 금나라는 강대해져 요나라와 북송을 멸망시켜 정치적, 군
우리 민족의 전쟁 1~2화 우리 민족의 전쟁1. 고구려와 위나라의 여-위 전쟁 고구려-위나라 전쟁은 242년부터 259년까지 네 차례의 고구려와 위나라의 전쟁을 말한다. 고구려는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한사군을 축출하고 부여, 동예, 옥저 등을 복속하여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지배했다. 고구려 10대 산상왕은 8대 신대왕의 아들이며 9대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고국천왕의 왕비이자 형수인 우씨와 모의하여 즉위했고, 형사취수제로 형수를 부인으로 삼았다. 아들을 태자로 삼아 형제상속을 부자상속으로 바꾸고 환도성으로 천도했다. 11대 동천왕은 10대 산상왕의 아들로 위나라 2대 조예(曹叡)와 함께 요동 지역에서 할거하던 공손씨(公孫氏) 세력을 정벌했다. 동천왕은 공손씨 세력이 무너지자 위나라를 기습 공격하자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역공했다. 고구려는 위나라와 3차례의 전쟁으로 수많은 군사와 백성을 잃었으며 수도 환도성이 함락당하고, 동천왕은 남옥저에 이어 북옥저로 피신했다. 환도성은 평지성인 국내성과 함께 축성한 산성이다. 조조가 헌제를 후한의 황제로 옹립하고 삼분 천하의 삼국시대를 열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서일환의 역사야톡(12화) 공자(孔子)특집 9~10 공자특집9. 공자의 또 다른 제자 유자, 자장 공자는 노나라의 실력자인 계손씨 맹손씨와 불화로 13년 동안 천하를 주유했다. 공자가 천하주유 때 함께 했던 제자들을 공문십철이라 한다. 천하주유를 함께 하지 않은 증자(曾子) 유약(有若) 자장(子張) 등은 공문십철에서 제외됐다. 유약(有若)은 노나라 사람으로 자유(子有)를 말하고, 명나라 가정제가 유자(有子)라고 개칭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안자(안회), 증자(증삼), 유자(유약) 3인 만이 자(子)로 존칭되는 성인이다. 공자가 사망하자 자장(子張), 자유(子游), 자하(子夏) 등이 유자(有子)를 공자 대신 모시자고 주장하자 증자가 비판했다. 유자는 공자와 행실이 닮았고 백성으로 하여금 풍족한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생각한 인물이다. 자장(子張)은 진(陳)나라 사람으로 전손사(顓孫師)을 말한다. 공자가 행동이 지나치다고 평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배우는 데도 열의가 있었고, 위급한 것을 보면 생명을 내걸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전손사는 ‘아름다운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귀한 지위를 가졌어도 잘한다고 여기지 아니하며, 남을 업신여
서일환의 역사야톡(11화) 공자(孔子)특집 7~8 공자특집7. 공문십철의 염경, 염옹, 염구 <염백우/염경(冉耕)> 염백우(冉伯牛)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자는 백우(伯牛)이고 ‘염백우(冉伯牛)’ 혹은 ‘염자(冉子)’도 불린다. 염백우는 염옹(冉雍), 염구(冉求)와 형제이며 장남이다. 염씨 삼형제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격려를 받으며, 학문적으로 성공하여 공문십철이 되어 일문삼현(一門三賢)으로 불린다. 염백우(염경)은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덕행(德行)으로 안연(안회), 민자건(민손), 중궁(염옹)과 더불어 유명했는데 사람됨이 단정하고 정의로워 공자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했다. 염백우가 공자와 함께 노나라에 돌아와서 악질(惡疾)에 걸렸다. 그가 병을 앓을 때 병문안을 온 공자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를 망쳤구나, 숙명이로다! 이런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다니.”라고 장탄식을 하며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공자보다 먼저 사망했다. <염옹/중궁) 중궁(仲弓)은 노나라 사람으로 염옹(冉雍)이라 한다. 공자의 제자이자 염백우의 동생이며 염구의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