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ㅣ
염치가 실종된 사회, 언제나 회복될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덕목을 꼽으라면 단연 ‘염치(廉恥)’일 것이다.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워할 치(恥)를 합친 이 말은,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존감과 도덕성의 기초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 공직사회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보면, 염치는 이미 ‘사라진 미덕’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사회짖도층에서 더욱 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 몰염치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모 국회의원의 딸 대학 조교수 특별채용 의혹은 우리 사회 공직윤리 붕괴의 축소판이다. 공정한 절차는 무시되고, 평가 기준은 뒤바뀌었으며, 결과에 맞춰 과정을 꿰맞춘 흔적이 드러난다. 청탁을 한 당사자나 이를 받아 실행한 대학 총장·보직교수·실무자들 모두, 자신들의 위치가 갖는 공적 책임을 망각한 채 ‘몰염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만약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지위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가 있었다면, 교육계 전체가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염치의 부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 예의•의리•청렴•부끄러움, 무너진 사유(四維)
사서삼경의 중용에는 '좋아하여 배우면 지혜에 가깝고, 힘써 행하면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알면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 고 했다. 부끄러움을 알 때 비로소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로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맹자 역시 '사람은 염치를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人不可以無恥)' 고 강조했다. 염치를 아는 것이 인간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명재상 관중은 예(禮)•의(義)•염(廉)•치(恥)를 국가를 지탱하는 네 기둥, 즉 '사유(四維)' 라 했다.
그는 경고했다.
하나가 무너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무너지면 위태로워지며
셋이 무너지면 뒤집히고
넷이 모두 사라지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오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 경고가 이미 우리 앞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듯하다.
◆ 염치를 제도화해야 국가가 산다
염치는 개인의 양심에서 비롯되지만, 공직자에게는 양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가진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공직자윤리법」, 「이해충돌방지법」, 국회 윤리특위, 감사원 감사, 공수처 수사 등 다양한 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제도가 있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직자의 염치를 제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보완이 필요하다.
동료 의원 감싸기 구조로는 투명성이 확보될 수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 이해충돌 심사를 국회 밖 독립기구에 맡기는 시스템 갖추는 것이다. 둘째는 가족 채용·인사 특혜에 대한 전면 금지 및 절차를 공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공직자의 가족이 관련 직무에 들어갈 경우, 모든 과정과 평가를 공개하고 외부 검증을 의무화해야 한다.
고위공직자·국회의원 청렴도 ‘국민평가제’ 도입이다. 이는 연 1회 국민이 직접 평가하고, 공천·승진·인사에 실제 반영해야 한다. 윤리교육 형식주의 타파 및 처벌 연계형 교육 도입도 중요한 처방이다. 청렴 교육 미이수 시 인사 불이익을 명문화해야 한다. 몰염치 공직자 명단 및 징계 결과 공개 강화이다. 투명성은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다.
◆ 염치를 회복하는 것이 사회 신뢰 회복의 시작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공자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유효한 국가적 덕목이다. 염치는 ‘도덕적 사치품’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신뢰를 떠받치는 기초적 토대이다.
공직자가 염치를 잃으면, 절차는 무너지고, 규범은 흐트러지며, 정의는 흔들리고, 국민의 신뢰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염치의 부재다. 국가 지도자들이 예의·의리·청렴·부끄러움을 스스로 되찾고, 그것을 제도로 확고히 재건했을 때 비로소 염치 있는 대한민국 이라는 말이 가능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