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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화폐라는 성벽 : 국가는 왜 암호화폐를 용인하지 않는가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③>

 

화폐라는 성벽 : 국가는 왜 암호화폐를 용인하지 않는가

 

암호화폐를 옹호하는 이들은 종종 국가의 규제를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권력의 횡포’로 규정하곤 한다. 국경 없는 화폐, 중앙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거래라는 수식어는 매혹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화폐를 사용해 온 긴 역사를 복기해 보면, 국가가 암호화폐를 향해 세운 높은 성벽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생존 본능이자, 수백 년간 처절한 대가를 치르며 얻어낸 ‘질서’와 ‘권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화폐가 국가의 독점적 권리가 되기 전,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17세기 영국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수많은 민간 은행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은행권(Banknote)을 발행했다. 화폐의 가치는 제각각이었고, 은행이 파산하면 그 지폐는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돌아왔다. 결국 1694년 영국 정부가 영란은행(Bank of England)에 독점적 발행권을 부여하며 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경제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세워진 질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진화한다. 1971년 8월 15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선언, 이른바 ‘닉슨 쇼크’가 그 기점이다. 달러를 가져와도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이 선언은 화폐의 본질을 송두리째 바꿨다. 화폐는 이제 물리적 실체(금)의 속박에서 벗어나, 오직 국가의 신용과 경제력이라는 ‘권력’만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가 되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화폐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며, 통치와 행정, 조세와 복지, 금융 안정과 직결된다. 국가가 화폐를 관리하는 이유는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질서의 안정과 책임을 떠안기 위해서다. 통화 정책 실패의 대가는 언제나 국민이 치러왔다. 그렇기에 국가는 화폐에 대해 권한만큼이나 책임을 지는 주체다.

 

암호화폐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발행 주체가 불분명하고, 가치 안정 장치가 없으며, 위기 상황에서 최종 보증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이 폭락해도 구제 금융은 없고, 시스템이 붕괴되어도 책임질 주체가 없다. 국가는 이러한 화폐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통제하지 못하는 화폐에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세와 범죄의 문제가 겹친다. 암호화폐는 익명성과 국경 초월성을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국가의 입장에서 이는 탈세와 자금 세탁, 불법 거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화폐는 투명해야 하고, 거래는 추적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 재정은 무너지고, 법치 역시 약화된다. 이 지점에서 암호화폐와 국가의 이해는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요 국가들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중국은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선언했고, 실제로 강력한 규제에 나섰다. 2021년 중국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는 진정한 화폐가 아니며 시장에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 선언의 주체는 ‘중국인민은행(People's Bank of China)’ 를 포함한 금융당국이었다. 이 한마디 이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친 것은, 국가의 의지가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 역시 다르지 않다. 암호화폐 거래는 허용하되, 화폐로서의 지위는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규제와 과세를 강화하며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는 암호화폐를 키우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선택이다. 자유를 허용하되, 질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한편 국가들은 다른 선택지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다. 이는 민간 암호화폐의 철학과 달리, 국가가 발행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디지털화폐다. 기술은 차용하되, 통화 주권은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국가는 암호화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가 차지하려 했던 자리를 국가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암호화폐를 “미래 화폐”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화폐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 신뢰,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국가는 이 세 가지를 포기할 수 없고, 따라서 암호화폐를 그대로 용인할 수도 없다. 국가가 암호화폐를 경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혁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화폐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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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암호화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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