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수)

  • 흐림동두천 -1.2℃
  • 구름많음강릉 3.8℃
  • 박무서울 1.0℃
  • 박무대전 -0.8℃
  • 구름많음대구 -2.5℃
  • 구름많음울산 1.3℃
  • 박무광주 -1.3℃
  • 구름조금부산 1.9℃
  • 흐림고창 -3.6℃
  • 구름많음제주 4.0℃
  • 구름많음강화 -0.9℃
  • 흐림보은 -3.3℃
  • 흐림금산 -3.7℃
  • 맑음강진군 -3.8℃
  • 구름많음경주시 2.0℃
  • 맑음거제 -0.1℃
기상청 제공

실시간 뉴스


<칼럼>설명 없는 판결은 정의가 아니다

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기획시리즈<사법신회회복 ③>

 

설명 없는 판결은 정의가 아니다

 

사법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불신은 대체로 “왜 이런 판단이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답을 얻지 못했을 때 축적된다. 패소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설명되지 않는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늘날 사법을 향한 시민의 질문은 결과가 아니라 이유에 있다.

 

 

재판받을 권리는 단지 법정에 설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검토되었고,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한다. 판결은 권력의 선언이 아니라 공적 설득의 문서다. 판사가 내린 결론이 시민의 상식과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를 메우는 것은 오직 논증과 설명뿐이다.

 

문제는 설명 책임이 점차 형식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판결문은 길어졌지만, 정작 핵심 쟁점에 대한 판단 이유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대방 주장을 왜 배척했는지, 주요 증거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판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을 때, 판결은 공정성보다 자의성으로 읽히기 쉽다. 이때 시민은 사법을 신뢰하기보다 의심하게 된다.

 

설명 없는 판결은 사법을 위험한 방향으로 이끈다. 첫째, 사법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권위는 침묵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해 가능성에서 나온다. 둘째, 재판을 통치 행위와 혼동하게 만든다.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결정은 행정 명령과 다를 바 없게 보이기 때문이다. 셋째, 패소 당사자뿐 아니라 재판을 지켜보는 시민 전체를 소외시킨다. 판결이 더 이상 공공의 언어로 기능하지 못할 때, 법은 시민과 멀어진다.

 

판결의 설명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판사의 재량을 침해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판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호하는 장치에 가깝다. 충분한 논증은 외부의 오해와 정치적 공격으로부터 판결을 지켜준다. 이유가 분명한 판단은 비판을 받더라도 존중받을 수 있다. 반대로 설명이 빈약한 판결은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사법 전체를 방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설명 책임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쟁점별 판단 이유를 충실히 기재하고, 당사자 주장에 대한 판단 과정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요구되어 온 법치의 기본 원칙을 현실에 맞게 복원하는 작업이다.

 

사법 신뢰 회복은 단일한 조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사 구조의 개선이 재판 환경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면, 판결의 설명 책임은 그 환경 속에서 정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요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인사 구조가 개선되고 판결의 논증이 강화되더라도,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한 판사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제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다음 글에서는 사법 신뢰 회복의 세 번째 조건으로서, 양심의 판사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호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법의 품격은 침묵하는 다수보다, 침묵하지 않는 소수에 의해 지켜지기 때문이다. 끝.

 

<컬럼 관련자료>

법은 왜 존재하는가?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36

 

판사 인사권 분산이 사법 신회 회복의 출발점이다.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41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