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④>
디지털 화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암호화폐 논쟁이 뜨거워질수록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자유’다. 중앙 권력의 통제를 벗어난 화폐, 국가를 거치지 않는 거래, 개인이 스스로 통제하는 자산이라는 이미지가 암호화폐의 매력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지금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디지털 화폐의 흐름을 보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디지털 화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우선 구분이 필요하다. 민간 암호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같은 ‘디지털’이라는 외형을 공유할 뿐, 철학과 목적은 정반대에 가깝다. 민간 암호화폐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한다. 기술의 외피는 같을 수 있어도, 주인은 다르다.
국가가 디지털 화폐를 검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 결제 시스템의 효율화, 금융 포용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통화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즉, 디지털화폐는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제도적 도구’다. 여기에는 발행 주체인 중앙은행이 존재하고, 법적 강제력과 가치의 안정성이 담보된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기술 실험이 아니라 국가 운영을 위한 제도적 도구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독자가 찾아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종 책임자’가 있다는 점이 민간 암호화폐와의 결정적 차이다.
이 점에서 국가 디지털화폐의 주인은 분명하다. 발행 주체는 중앙은행이고, 책임 역시 국가가 진다. 가격은 안정성을 전제로 하며, 법정 화폐로서 강제력을 갖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종 책임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민간 암호화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도입에 속도를 내는 배경 역시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대응, 위조 지폐와 불법 거래 차단, 그리고 자국 내 금융 흐름에 대한 관리 강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한국 역시 디지털 화폐를 검토하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종 제기되는 우려가 있다. “국가 디지털화폐는 개인을 감시하는 수단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디지털 화폐는 거래 기록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개인의 경제 활동이 더 쉽게 추적될 수 있는 구조를 갖는다. 자유의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감시의 가능성은 민간 암호화폐에 없고, 국가 디지털화폐에만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의 카드 사용, 계좌 이체, 모바일 결제는 상당 부분 기록되고 관리되고 있다. 문제는 ‘기록의 존재’가 아니라, 그 기록을 누가 어떤 책임 아래 관리하느냐다.
민간 암호화폐의 세계에서는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 거래소가 무너지면 개인이 손실을 떠안고,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도 구제 장치는 없다. 반면 국가 디지털화폐는 제도와 법률, 사법 절차의 틀 안에서 관리된다. 통제는 존재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함께 존재한다.
결국 디지털 화폐의 주인은 기술이 아니다. 알고리즘도 아니다. 제도와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가 곧 주인이다. 이 점에서 국가 디지털화폐의 주인은 국가일 수밖에 없고, 민간 암호화폐의 주인은 실체 없는 시장 심리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이냐 아니냐’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책임지는 화폐를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 디지털 화폐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만 그 미래가 자유의 언어로 포장된 무책임의 세계가 될지, 책임을 전제로 한 제도의 세계가 될지는 우리의 판단에 달려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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